초기 스타트업에게 조직 문화 세팅은 사치일까요?
초기 스타트업에게 조직 문화 세팅은 사치일까요?
2023-01-19

미디어 스타트업 EO가 주최한 스타트업 서바이벌 오디션 <유니콘 하우스>를 통해 대중 앞에 멋지게 데뷔한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유니콘 하우스> 시즌 1 우승 팀이자 실험 자동화 플랫폼을 개발하는 에이블랩스입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신상 대표는 그간의 노력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니콘하우스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같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죠. 

그로부터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에이블랩스는 실험 자동화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인류 모두의 건강한 삶을 돕는다는 미션에 집중하며, 단단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참고: 시약 나눠담는 백만번 수작업을 로봇으로… “시간 아껴 더 가치있는 연구를” / 에이블랩스 “‘K-바이오신화’ 쓰려면 자동화가 필수죠”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임에도 계속해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에이블랩스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신상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특별하게도, ‘로켓 성장’, ‘J 커브’ 등 스타트업 씬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들보다, ‘조직 문화’,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 ‘느리지만 단단한 성장’과 같은 키워드로 깊이있는 인사이트를 나눴습니다. 어쩌면 단단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던 이면에는 누구보다 조직 문화에 진심인 신상 대표의 가치관이 회사에 투영됐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던 시간이었습니다. 

Part 1. 몰입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

Q. 일반적인 제조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초기에는 제품과 기술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에이블랩스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기업 블로그에 핵심 가치와 미션, 비전 등을 상세히 적어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줌으로 만난 에이블랩스 신상 대표님

에이블랩스를 창업할 때부터 저는 HR, 조직문화에 ‘진심’이었어요. 제일 많은 시간을 쏟아부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회사에서 하루에 최소 3분의 1 이상, 길게는 절반 가까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마도 가족 외에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야말로 회사 동료일 가능성이 크죠.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구성원들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하고, 일의 의미에 대해서 느끼는 게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공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빠르게 사업 성장 곡선을 그려나가는 일 못지않게, 몰입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구성원들이 현재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일하고 있는지, 어떨 때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의 성장이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회사의 가치에 녹이려고 합니다.

Q. 에이블랩스 블로그에는 회사의 비전, 미션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도 실려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구성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건가요?

블로그를 정식으로 개설한 건 에이블랩스 설립 후 1년 차 정도부터였습니다. 초기의 목적은 내부 구성원들이 한눈에 회사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 개념의 노션 페이지를 구축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외부에서도 많이 방문하시더라고요. 아마 에이블랩스 채용 지원자분들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요. 인터뷰는 저희 내부 마케팅 매니저님께서 진행하고 작성해주고 계십니다. 에이블랩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저와 계속해서 얼라인을 맞추고 있죠. 

구성원 인터뷰 등을 통해 에이블랩스의 사내 조직 문화를 엿볼 수 있다(출처=에이블랩스 블로그)

또한,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저희 회사 내부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노션 페이지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팀별 업무에 대한 공유는 물론, 구성원별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짧게 소개하는 페이지도 만들어서 공유하고 있어요. 앞으로 회사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구성원들끼리의 직접적인 소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인 페이지로 공유하면 소속감을 높일 수 있죠. 그 외에도 구성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이드프로젝트, 일상 등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에이블랩스 내부 노션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귀여운 사이드프로젝트 (출처=에이블랩스)

Q.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조직 문화에 신경을 쓰는 것 자체를 사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빠르게 제품을 성장시키고 프로덕트 마켓 핏에 맞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고∙∙∙ 훨씬 더 사업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조직 문화 세팅을 뒷단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가가 가진 생각, 철학, 역량이 그 팀에 매우 깊숙이 녹아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창업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 문화 세팅을 중요하게 여기는 창업가로서, 스타트업에서 성과를 빠르게 만들어내고, 퍼포먼스를 내고, 로켓 성장을 이뤄내는 일 모두 좋지만, 무엇보다 ‘탄탄한 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건 모든 팀원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해요. 

물론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창업가분들도 많으실 거예요(웃음).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각 회사 별 상황에 맞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은. 조직 문화 정립에 시간을 쏟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치로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 회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방향성을 확인하는 데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Part 2. 기업 성장 스테이지 별로 진화하는 조직 문화 

Q. 다시 핵심 가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에이블랩스의 핵심 가치를 세팅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나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 같은 제조 스타트업의 경우 미션과 비전이 명확히 세팅되어서 정리된 곳이 많이 없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더 그렇죠. 저희의 핵심 가치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어요. 핵심 가치는 초기 맴버들이 모여서 함께 설정했는데요. 명확히 정의하는 단계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고자 노력했어요. 

에이블랩스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 5개 (출처=에이블랩스 블로그)

[에이블랩스의 핵심 가치] 

1.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자세
2.    모든 사고의 중심, 연구자
3.    최고의 경험 지향
4.    완벽함을 넘어선 탁월함
5.    소중한 가족을 위해

에이블랩스를 처음 설립할 때, 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적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항상 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이 제품이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항상 생각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때문에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소중한 가족’이 들어가게 됐죠.

Q. 비전과 미션, 핵심 가치를 명확히 세팅해둔 만큼, 인사 평가와 리뷰도 이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 같은데요.

보통의 인사 평가, 성과 리뷰라고 하면 상위 조직의 상사가 하위 조직의 구성원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고가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저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각 구성원들은 개인이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평가를 받고 싶은지, 본인의 리더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설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평가’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닌,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리뷰’에 초점을 두는 거죠.

Q. WHY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에이블랩스 내부 공모전 (출처=에이블랩스 노션 페이지)

맞아요.  올해(2023년) 2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바이오 실험 자동화 최대 전시회에 저희가 부스로 참석합니다. 이 전시회를 더욱 빛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내 공모전을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아이디어들을 현장에서 구현하기로 했구요.

단순히 윗선에서 시켜서 업무를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우리 회사 사업 성장에 왜 중요하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제시하고자 합니다. 

Q. 기업 문화라는 건, 초기에 이렇게 정립이 되어 있다고 해도 회사가 성장하고 구성원들이 늘어나면서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초기에 기업 문화를 명확하게 세팅하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고, 성장 방향성에 맞도록 유연하게 바꿔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에이블랩스의 핵심 가치를 만들 때 팀원이 6명이었는데 지금은 27명으로 늘어났어요. 팀원이 늘어날 때마다,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고려하고,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를 고도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 문화란 건, 결국 기업의 성장 스테이지 별로 진화해야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현재의 핵심 가치도 향후에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네요.

Part 3. “회사=나” 공식을 탈피해야하는 이유

Q. 지난해 퓨처플레이 0110 마피아 게더링 행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다른 창업가분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셨나요?

처음 워크숍 초대장을 받고 참석 여부에 대해 고민하긴 했습니다. 바쁜 일이 많이 몰려있었거든요. 그런데 문득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창업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테니,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퓨처플레이 0110 마피아 게더링에서 자기소개 중인 신상 대표님

워크숍에서 진행됐던 모든 세션들이 다 뜻깊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앞선 길을 걷고 계신 선배 창업가분들의 토크 세션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어요. 그다음으로 좋았던 건 저녁 네트워킹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서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공유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럭스로보 오상훈 창업가님, 두들린 이태규 대표님, 그리고 서울로보틱스 이한빈 대표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걸로 기억해요.

팀에서 저는 캡틴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에이블랩스라는 항해를 이끄는 선장으로서 배가 어떤 방향으로 왜 가야 하는지를 그려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요. 항해가 처음이다 보니 중간중간 장애물에 부딪힐 뻔한 일이 너무 많은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제각각의 의문이 머릿속에 차오르는 순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네트워킹 자리를 통해 다른 창업가분들을 만나면, 제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이미 경험한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의 시행착오를 들으면서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구분을 만들 수 있죠.

퓨처플레이 0110 마피아 세션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네트워킹 세션보다 가장 많은 창업가분들을 만날 수 있던 자리였어요. 다음에 퓨처플레이에서 이런 자리 또 마련해주신다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예비 창업가분들이 건강하고 꾸준하게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선배 창업가로서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현재 K-ICT 창업멘토링센터에서 예비 창업가분들을 위한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멘토링을 하는 이유는, 예비/극초기 창업가분들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진행하고 있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일들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사업이 흔들리기도 하고 멘탈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비 창업가분들께는 나와 회사를 동일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회사를 하나의 독립된 유기체로 보고, 창업가와 팀원은 이 유기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 숨이 바로 회사가 추구해야 할 철학이 될 수 있고 가치나 비전이 될 수도 있고, 기술이 될 수도 있겠죠.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험난한 세상에서 이 유기체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창업가, 그리고 스타트업 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블랩스 자세히 알기 > https://www.ablelabsi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