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6 #종훈메일
지난주 사내외 회의, 모임에서 ‘메타인지’가 자주 화제에 올랐습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한 인지 능력’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량과 성과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메타인지력이 높으면 업무의 목적과 절차, 상황과 맥락을 잘 파악합니다. 메타인지력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조직문화가 건강하고, 높은 성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메타인지 능력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몇 사람과 나눈 이야기와 제 경험을 더해 말씀드리자면, 첫걸음은 ‘자문자답’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특히 강하게 확신하는 것일수록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입장을 상대와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입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내 생각과 행동을 돌아봅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마지막은 ‘제3의 눈’입니다. 믿을 만한 멘토나 상사, 지인에게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묻는 겁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사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문자답’과 ‘역지사지’를 통해 깨달은 것을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이어가면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메타인지에 있어서 특히 나의 장단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메타인지력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는 다음 메일에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Product Initiative1팀 선하입니다. “하루가 쌓여서 1년이 되고, 10년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며 부끄럽지 않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는 선하는 기회가 되면 두 아들이 인도네시아에서도 교육을 받도록 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창업의 꿈을 키우는 것도 다문화 가정 2세들이 어머니 나라 언어와 문화를 잘 배우도록 하는 교육 사업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Product Initiative 1팀 선하
아버지는 미술 선생님이고 어머니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신다. 형도 실내디자인 분야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작은 아버지는 전업 작가다. ‘미술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면서 ‘나도 미술을 전공해야 하나?’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형이 미대에 진학한 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 미술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스케치북과 4B연필을 가져와 선을 그어보라고 하셨다. 그 선을 보시고 “너는 미술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재능이 없음’을 일찍 발견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사진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프레임 안에 피사체를 담아내는 것은 같은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영상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고2때 (2001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유네스코 빌딩 미지센터에서 방송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였다. 청소년인터넷방송국을 만들어 10대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KBS, PBS에 내보내기도 했다. 방송 일이 재미있어서 학교보다 방송국에 많이 다녔다. 선생님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걱정도 많이 했는데 일간지 사회면에 인터넷방송국 활동 내용이 크게 보도되면서 설명이 됐다. 신문방송학은 학문의 크로스보드에 서 있다. 미디어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생각보다 무엇인가 융합하는데 좋은 학문이라는 생각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다.
2008년 즈음 디지털 마케팅 붐이 일었다. 대학생 대상 광고경진대회의 주제가 인터넷 마케팅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1년을 준비했다. 서울에서 1등, 전국에서 3등을 차지했는데, 인터넷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쌓는데 도움이 됐다. 취업하던 시기가 막 스마트폰이 나온 터라 모바일 기획자가 부족했다. 대행사에 들어가 모바일 기획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했다. 2012년 티몬에 합류해서 CRM툴 기획을 하다가 전사 프로젝트 관리, 이어서 스크럼마스터를 맡았다.
티몬의 새로운 CTO와 업무 방식이나 가치관이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1달 정도 지나서 게임 회사에 입사하기로 했는데, 사회 선배가 시장조사차 인도네시아에 간다며 동행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개도국이라는 이미지 말고는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다. 현지에서 보니 인구도 많고 내수 시장 가능성도 큰 역동적인 나라였다. 취업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 선배와 같이 인도네시아에서 창업했다. 기업에 소모성 자재를 납품하는 MRO 관련 사업이었는데, 구매 절차가 투명해져서 기업 의사결정권자들의 만족도는 높았으나 직접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실무자들의 저항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3년6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면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다. 2017년말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 선배와 한 번 더 창업했다. 건물 외벽 창호 시공하는 회사를 위한 간편한 자재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잘 풀었지만, 시장성이 없었다. (도면만 입력하면 창호 시공에 필요한 자재 수량을 파악해 발주까지 마치는 서비스로, 다른 외장재 분야까지 확장하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어도 창호 시공 회사에게는 꼭 필요한 제품이어서 당시 창업한 회사는 선배가 잘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도 태어나면서 경제적인 안정이 필요했다. 2020년 배송대행 플랫폼에서 제품 총괄을 맡았다. 배달하는 사람들이 주된 사용자들이었는데, 고객을 설득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퓨처플레이는 워낙 잘 알고 있었고, 동경 슬러시 행사에서 중희에게 명함을 받은 적도 있어 익숙한 회사였다. 산업의 경계를 뛰어 넘어 생각하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동안 쌓은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Product을 만들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관심이 ‘제로투원’의 출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회 현상,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그 안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대입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고객의 니즈와 이를 해결할 솔루션이 시대정신과 합치됐을 때 제로투원의 좋은 환경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낼 때 친구도 없고 주말이 너무 심심했다. 소개팅 앱을 통해 아내를 만나 현지 사람들이 가는 곳을 자주 갈 수 있었다. 아내는 유투브 컨텐츠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거나 한국 스타트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돕는 일을 한다. 아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도네시아에 관심이 쏠리고, 아세안 10개국은 공통점도 많아 전체 시장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두 아들이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개의 문화권을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교육받을 기회도 만들고 싶다. 또 많은 다문화가정 2세들이 어머니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사업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